할머니 당신의 용기가 아름답습니다.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첫 증언
[1992.01.13. 제29회 보도사진전 특별상/신상순 기자]
자막 -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1991년이 돼서야 첫 증언을 시작했습니다.
증언 - 일본군대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신문에 나고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내가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아니다.이거는 바로 잡아야 한다.
도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나오게 되었소.누가 나오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 아 이제 내가 나이가 70이 다되었소.
이만큼 나이먹고 이제 죽어도 괜찮아.
나올 때 좀 무서웠어요. 죽어도 한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야 말 거요.
언제든지 하고야 말 거니까.
내 팔을 끌고 이리 따라오라고. 따라간다고 하곘어요?
무서우니까 안 갈려고 반항을 하니까 발길로 차면서
내 말을 잘 들으면 너는 살 것이고 내 말에 반항하면
너는 여기서 죽는 거야. 죽고. 결국은 그야말로
참 계집애가 이 꽉 물고 강간을 당하는ㆍㆍㆍ
그 참혹한ㆍㆍㆍ.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못다 하겠어.
이떄 이것은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하고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자막 - 故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전시(戰時)하 여성인권 침해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1991년 첫 증언
일제강점기 ‘위안부’ 관련 문헌자료는 일본이 항복한 1945년 8월 15일 전후 연합군에 의한 전쟁범죄 추궁을 회피하기 위하여 당시 일본군과 정부에 의해 대부분이 소각되었거나, 현재 남아있는 있는 자료 중에서도 중요한 문건은 일본정부가 공개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위안부’생존자들의 증언 등 구술 자료는 당시의 역사복원을 위해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2006년 작고한 북한 박영심 할머니의 경우는, 중국 숭산 등지에서 일본군‘위안부’로서 겪었던 참상에 대한 본인의 구술 증언뿐만 아니라 중국 운난성 쿤밍의 미군관할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 당시 미군과 미국정보당국이 작성한 보고서 및 사진, 운난성에 참전한 전 일본군 하야미 마사노리의 증언 등이 발굴되어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 대표적인 예이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로부터 시작된 생존자들의 공개 증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을 역사의 산증인이자 평화의 각성자로 우뚝 서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